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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8월 15일 광복절

시작부터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를 않았던 2020년도 벌써 절반을 넘어갔습니다.

벌써 8월의 절반이 지나갔고 어느덧 광복절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애국 뽕맛을 한번 느껴보는 글을 써보겠습니다.








우리 민족의 뼈 아픈 역사인 길고 길었던 일제강점기 35년 끝에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광복된 것을 기념하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축하하는 날 입니다.





광복절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일제로부터 탄압 당하던 우리의 말과 글, 우리의 역사 등을 되찾은 날 이라고 하여

빛 광光 돌아올 복復 자를 써서  빛을 되찾은 날 이라는 의미로 광복절이라고 합니다.



두번째는 광복 이전 일본 패망직전인 1945년 2월 미,영,소 지도자들이 크림반도에 모여 일본의 패망문제를 논의했습니다.

그때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위해 복위 38도선을 군사 분계선으로 설정하여 남쪽은 미군, 북쪽은 소련군이 주둔을 하기로 합의를 하게 됩니다.

이 결정으로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북쪽은 소련군이 남쪽은 미군이 들어와 38선을 단순 군사분계선으로 삼고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핑계로

두 국가의 대립이 이어졌으며 결국 우리가 남과 북으로 갈라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가 아직 자주독립을 하기 어려울것이라는 타 국의 판단으로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를 세우지 못했고

광복 이후 3년뒤인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1년 뒤에 우리나라의 4대 국경일을 지정하게 됩니다.

그때 공식적으로 1945년 8월 15일 일제로 부터의 광복을 기념하는 날이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날을

그렇게 두가지의 의미로 8월 15일 광복절로 지정하게 됩니다.










멕시코는 9월 내내 축제를 하는데요

이는 1810년 9월 16일 스페인으로 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몇일의 휴무가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날을 어떤 방식으로 축하하고 기념하는지에 따른 마음가짐이 다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제강점기의 시작부터 광복절까지에 대해 잠시 알아보도록 합시다.





일제강점기는 대표적으로 3기로 나뉠 수 있는데요


1910~1919 1기 무단통치

1919~1931 2기 문화통치

1931~1945 3기 민족말살정책

이렇게 나뉠 수 있습니다.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1기 무단통치 1910 ~ 1919


1905 을사조약 이후 남산에 통감부가 설치됩니다.

이때 초대통감이 우리가 흔히 들어봤던 이토히로부미 입니다.

이후 2대를 거쳐 3대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오는데 이 자가 바로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입니다.

총독부의 지휘아래 헌병경찰제와 같이 무력으로 우리민족을 수탈하고 자유과 권리를 억압하였습니다.

또한 이때는 태형과 같은 야만적 형벌제도를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태형은 조선인을 대상으로만 집행하였으며, 곤장을 때리는 형벌이었습니다.

보안법, 신문지법, 출판법 등으로 집회 및 결사 자유 박탈 및 도서발행 검열을 위한 법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회사령, 임야령, 어업령, 광업령, 토지조사령 등으로 우리나라의 자원과 토지를 수탈을 했습니다.












2기 문화통치 1919 ~ 1931


무단통치를 견디지 못한 우리민족은 수 많은 사람이 모여 만세운동을 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3.1절입니다.

같은 해 1919년 4월 11일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까지 수립되게 됩니다.

그렇게 일본은 더이상 무단통치는 소용이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고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점차 변화를 시키게 됩니다.

그러면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준다는 약속으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설립하게 해줍니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는 검열로 걸렀겠지만요...

그리고 국세를 낼 수 있고 만 25세 이상의 성인 남성에게 투표권을 주기도 합니다.

일본이 달콤한 말로 조선인들을 설득하자 친일파들이 엄청나게 생겨난 때 이기도 합니다.


이때 1920년 11월 4일에 제1회 전국체육대회 개최를 허락해주고

야구대회 시구에서는 독립운동가이셨던 월남 이상재 선생님께서 한반도 최초의 시구를 하기도 하셨습니다.










3기 민족말살정책 1931 ~ 1945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얼마 뒤  1937년 중일 전쟁으로

물자와 인력이 부족했던 일본은

조선인의 민족성 말살과 저항을 잠재우며 전쟁협력을 강요하기 위한 것으로 황국신민화 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일본과 조선은 같은 민족이니 합심하여 천황폐하께 충성을 다한다는 황국신민서사를 만들어 제창하게 하고

1938년에는 학교에서 조선어 교육 폐지, 일어 상용 , 창시개명을 강요하는 등의 정책을 펼치게 되는데 이게 바로 민족말살정책입니다.


또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 손기정 일장기 말소사건이 발생하면서

동아일보가 정간조치를 당하고 1938년에는 강제 해산하게 됩니다.


이후 1941년 12월7일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2차세계 대전에 참여하는 명분을 낳게 됐고

 미국,영국, 네덜란드가 일본에 선전 포고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일본이 패망한 결정적 요인중 하나입니다.


이후 1945년 5월 8일 독일이 항복을 하고 1945년 8월 14일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 통보하고

35년 동안의 일제강점기로 부터 1945년 8월 15일 우리민족은 독립을하게 됩니다.














수 많은 우리 선배님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지금 이 땅에 두 다리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8월 15일 광복절 단 하루 만큼이라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써주신 우리 선배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만세 삼창 하고 물러나겠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만세!

만세!